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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회사원인 피에르 주앙(25)은 여름휴가 절정기지만 여전히 파리에 머물고 있었다. 고향 룬?플라주에서 동생들과 50대 아버지가 파리로 왔다. 가족이 함께 파리 최대 규모 경기장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열린 K팝 그룹 블랙핑크 월드투어 콘서트를 보기 위해서다. 그의 여동생 에르민(14)은 'K팝 콘서트가 이번이 처음이냐'는 질문에 고개를 저으며 "일주일 전에 바로 이곳에서 스트레이키즈 공연을 봤다"고 말했다빠칭코
. K팝이 여름이면 최소 2주에서 한 달간 장기 휴가로 한산해지는 파리의 일상 풍경까지 바꾸고 있는 셈이다.
2, 3일 이틀간 파리에서 진행된 블랙핑크 콘서트엔 11만여 관객이 몰렸다. 무리 지어 온 10대 소녀들뿐 아니라 10대 딸과 동행한 가족 단위 관객도 꽤 보였다. 스트라스부르에서 온 마리 엘렌(47)과 발렌타인 오투웬(45) 가야마토사이트
족도 그랬다. 마리는 "과거엔 한국에 대해 잘 몰랐지만 열한 살 딸들이 블랙핑크 열성 팬이라 2주 전에는 한국 여행을 다녀왔고 오늘은 파리 콘서트장까지 오게 됐다"며 "자연스럽게 한국 문화를 접하면서 나 역시 한국 음식과 도자기에 푹 빠졌다"고 말했다.
2일 블랙핑크 월드투현대건설주가
어 콘서트가 열린 프랑스 파리 스타드 드 프랑스 경기장에서 현지팬들이 환호하고 있다. 파리=정승임 특파원
‘문화 강국’ 꿈 뿌주식현재가
리내린 파리의 오늘
6월 26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백범 김구 선생 제76주기 추모식에서 이종찬 광복회장이 헌화하고 있다. 강예진 기자
문화 강대국 프랑스 한복판까지 스며든 한국 문화의 힘. 이 놀IT종목
라운 풍경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다. 1947년 백범 김구가 자서전 '백범 일지'에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썼던 그 간절한 소망이 현실이 된 것이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한국 문화의 불모지였던 파리의 달라진 풍경에서 보듯 지금 한국 콘텐츠는 음악과 영화, 문학과 공연을 아우르며 전 세계를 흔들고 있다. 프랑스에서 K팝의 위상은 영부인인 브리지트 마크롱 여사가 주최하는 자선 콘서트에 블랙핑크, 지드래곤 등 K팝 스타들이 단골 게스트로 참여할 정도로 높아졌다.
오늘날 한국 문화의 성취는, 총과 칼 대신 예술로 싸우고 기록했던 독립 운동가들의 용기와 창조 정신과 맞닿아 있다. 비폭력이자 집단적 기억의 생산 방식으로서 문화예술은 해방 이후에도 살아남아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만들었고, 이제 'K'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의 언어가 되고 있다.
K컬처 분야별 주요 수상 내역. 한국일보 그래픽뉴스부
억압 뚫은 문학, 민족 정체성의 언어
이상화와 고월 이장희의 시선집 '상화와 고월'과 주요섭의 '사랑손님과 어머니'.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그중에서도 문학은 가장 먼저 독립 정신을 품은 예술이었다. 금지와 검열 속에서도 시와 소설은 은유로 민족의 상처를 기록했고, 그 저항 정신은 오늘날 세계 무대에서 다시 울림을 주고 있다. 작가 한강은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김혜순 시인은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과 독일 국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정보라, 박상영 등도 해외 유수 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등 K문학을 향한 전 세계의 관심은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그레이스 고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SOAS) 한국학 교수는 최근 연세대에서 열린 '2025 글로벌 문학포럼'에서 "SOAS에서 특정 국가와 언어 중심의 문학 강좌들이 축소되는 가운데서도 한국 문학 강좌는 지속적으로 개설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세계적 성취의 뿌리는 일제강점기 문학의 저항 정신에서 찾을 수 있다. 이상화(1901~1943)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1926)는 일제에 빼앗긴 조국을 '들'로, 민족 해방의 희망을 '봄'으로 빗대며 검열을 피하지 않고 시대를 응시했다. 서정적 단편소설 '사랑손님과 어머니'(1935)로 널리 알려진 주요섭(1902~1972)은 1919년 평양에서 독립신문 발간으로 체포되는 등 저항의 문인이었다. 상하이 유학 시절에는 한인청년회를 결성해 활동했다. 해방 후에는 친일 문학가를 비판하는 글도 다수 남겼다. 겉으로는 섬세한 문학이었지만, 안에는 날카로운 시대 의식이 숨어 있었다.
일제강점기와 군부 독재의 고초에도 한국 문학은 상징과 은유로 독립 정신을 강하게 벼려냈다. K문학은 독립 정신을 가장 먼저 실현한 예술이 됐고, 21세기에는 한강의 작품('소년이 온다') 등으로 세계 문학계에서 그 숭고한 저항 정신이 조명받고 있다.
노벨문학상 시상식이 열린 지난해 12월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 대형 서점에 수상자인 한강 작가의 코너가 마련돼 있다. 스톡홀름=연합뉴스
민족 한 담은 영화, 세계 사로잡은 K무비
영화 '풍운아'(1926)에 출연한 나운규. 한국일보 자료사진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는 한국 영화에도 깊게 스며 있다. 그 뿌리는 독립운동가이자 예술가였던 나운규(1902~1937)에게서 찾을 수 있다. 3·1운동에 참여했던 나운규는 일제 관공서 파괴를 계획했다는 혐의로 2년간 옥고를 치렀고, 이후 일제의 탄압에 신음하던 민족의 한을 영화로 담아냈다. 그가 각본, 감독, 주연을 맡은 흑백 무성영화 '아리랑'(1926)은 일제 고문으로 정신이상이 된 주인공이 일본 경찰 앞잡이를 살해하는 이야기다. 특히 주인공이 포승줄에 묶여 잡혀가는 장면에서 민요 ‘아리랑’이 울려 퍼지며 관객들도 합창했던 영화사적 사건이다. 필름은 소실됐지만, 이 영화는 민족의 저항을 문화로 표현한 이정표로 남았다.
이 정신은 현재에도 이어진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은 계급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 프랑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미국 아카데미시상식 4관왕(작품상·감독상·각본상·국제영화상)을 차지했고,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2021~2025)은 전 세계에 신드롬을 일으켰다. 모든 한국 콘텐츠를 통틀어 가장 크게 흥행한 시즌1은 세계 최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의 역대 최고 인기 드라마 1위를 4년 동안 지키고 있다. 한국 전통 문화 요소가 살아 있는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주제곡 '골든'이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100'과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 ‘톱 100' 모두 1위에 오르는 진기록을 세우며 흥행 중이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사운드트랙 '골든' 커버
한형석에서 박천휴까지, 세계로 뻗은 무대예술
항일독립운동 시기의 한형석. 한유한형석기념사업회 제공
문화로 나라를 지키려 했던 예술가는 무대 위에도 있었다. 한형석(1910~1996)은 상하이에서 임시정부와 함께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작곡가·연출가·교육자였다. 동제사 활동 등 중국 내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부친 한흥교(1885~1967)의 영향 아래, 그는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교육을 받으며 자연스럽게 국제적 감각과 민족 의식을 함께 키웠다. 상하이 신화예술대학에서 음악과 연극을 전공한 그는 이후 중국 각지의 학교에서 예술 교사로 일하며 항일 연극을 만들고 군악대를 지휘했다. 공연과 작곡, 연출로 항일 의지를 알리고 한민족의 정체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1940년 시안에서 직접 연출·작곡·지휘한 가극 '아리랑' 공연은 한중연대의 문화 상징으로 기록됐으며, 광복군 합류 이후에는 공식 군가인 '광복군가' '압록강 행진곡' 등을 작곡해 최전선 선전 활동을 이끌었다.
그가 꿈꿨던 ‘우리 손으로 만드는 예술’이 80년 만에 세계 무대에서 실현되고 있다. 2016년 서울 대학로에서 초연된 '어쩌면 해피엔딩'은 지난해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메이비 해피엔딩'이라는 제목으로 개막해 지난 6월 토니상 6관왕을 차지했다. 한국이 배경이고, 한국 작가 박천휴가 창작 파트너인 작곡가 윌 애런슨과 직접 영어 대본 작업도 맡아 토니상 극본상과 음악상을 받았다.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가 한국인 최초로 단독으로 리드(총괄) 프로듀서를 맡아 지난해 4월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한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는 브로드웨이 성공에 이어 올 4월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서도 막을 올렸다. 누군가의 것을 따라가는 예술이 아니라, 우리 방식으로 새 길을 여는 예술이 마침내 세계 무대에 닿고 있다.
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버전 '메이비 해피엔딩'의 남녀 주인공 대런 크리스(왼쪽)와 헬렌 셴이 6월 8일 토니상 시상식에서 뮤지컬의 한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뉴욕=AP 연합뉴스
미래 잇는 문화유산 수호자들
근역서휘.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무대가 몸으로 시대를 말한다면, 문화유산의 계승과 전시는 눈으로 역사를 보여준다. 1919년 3·1운동의 독립선언서에 이름을 올린 위창 오세창(1864~1953)은 전통 미술을 수집하고 기록해 지켜냈다. 일제 시기에 고미술품을 사들인 일본인 소장가들에 맞서, 전통 문화유산의 유출을 막기 위해 한국의 옛 글씨와 그림을 모은 그의 수집과 연구는 후대의 간송 전형필(1906~1962)로 이어졌다. 오세창의 '근역서휘' '근역화휘' '근역서화징'은 민족 예술의 정체성을 지키는 바탕이 됐고, 전형필은 이를 계승해 ‘문화보국’을 평생의 소명으로 삼았다. 전형필은 훈민정음 해례본,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 등 수많은 유산을 일본의 손에서 지켜냈고, 오늘의 간송미술관이 그 성과다.
겸재 정선의 화훼영모화첩 중 '과전전계'. 대구 간송미술관 제공
해외 12개국에서 1만2,706점의 유산이 환수되는 등(국가유산청·2025년 1월 기준)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지금도 계속된다. 국내 미술품을 해외에 소개하기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11월부터 미국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을 시작으로 '이건희 컬렉션'이 해외 순회 전시를 시작한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최근 언론에 "한국 문화의 저력과 그 뿌리로서 한국 미술을 소개하는 전시를 해외에 열겠다"며 대규모 전시를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결국 지금의 K컬처 열풍은 나운규의 스크린, 이상화의 펜, 한형석의 무대가 꿈꿨던 세상이다. 총과 칼 대신 문화와 예술로 시대에 저항했던 그들의 용기와 창조 정신이 오늘날 K컬처라는 이름으로 꽃을 피운 것이다. 김구가 바랐던 '가장 아름다운 나라'의 꿈은 지금 이 순간 일상 속에서 계속되고 있다.
파리= 정승임 특파원 choni@hankookilbo.com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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